순천 102km를 뛰고 2주가 지났다. 장수는 네 번째다. 이번엔 기록 볼 생각 없이 살방살방 뛰기로 했다. 접수하고 기록란에 “화이팅!!!“이라고 적었다.
전날
대회장 식당에서 쿠폰으로 저녁을 먹고 체육관에서 잤다. 9시쯤 잠들었다. 자다 깨다 했지만 잠은 충분히 잔 것 같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조명은 거의 꺼져 있고 벽 따라 침낭들이 놓여 있었다. 몇 사람이 먼저 일어나 있었다.

아침은 바나나 세 개, 베이글 하나, 파워에이드, 배 주스.
출발 10분 전. 잠 잘 잤고, 컨디션 좋고, 아침 잘 먹었고, 날씨 좋고. 오늘은 천천히 여유롭게 즐기면서 가자.
첫 정상까지
8시에 출발했다. 운동장을 지나 1.5km쯤에서 병목이 시작됐고 산에 들어갔다. 여유 있게 가기로 했으니까 그냥 줄 뒤에 섰다.
1시간 만에 첫 정상에 올랐다. 4km. 후미였고 추월을 많이 당했다. 그래도 내 페이스, 내 리듬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풀냄새 흙냄새가 좋았고 날씨도 좋았다.

CP1에서 떡 세 개, 포도 두 알을 먹고 물을 채웠다. 다음 CP까지 14.8km. 젤은 여섯 개를 가져왔는데 출발 전에 하나, CP1 직전에 하나 먹어서 네 개가 남았다. 오늘은 에너지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먹어 보자고 했다.
CP2까지
CP1을 지나니 뛰기 좋은 구간이었다. 뛰었다 걸었다 뛰었다 걸었다. 2시간 41분에 13.47km. 첫 CP 전에 나를 지나간 사람들을 대부분 다시 지나쳤다. 12km쯤 살짝 배가 고파서 젤을 하나 먹었다. 아픈 데도 불편한 데도 없었다. 숨이 조금 찼지만 기분 좋을 정도였다.
임도로 나오니 하늘이 보였다.

17km쯤에서 몸에 데미지가 조금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임도를 뛴 탓이다. 배도 살짝 고팠다. CP2까지 2km 남았지만 참지 않고 젤을 먹었다. CP2에서 주먹밥, 바나나를 먹고 음료를 채우고 사탕을 챙기고 화장실에 갔다. 심박은 127이었다. 이 정도면 힐링런이다.
장안산
CP2 이후는 장안산 오르막이다. 페이스는 12분대로 떨어졌지만 심박은 140 정도였다. 능선에 올라서니 억새였다.

이 능선을 보러 장수 J 코스에 온다. 사진을 찍었지만 눈으로 더 담았다.

13시 30분, 22.85km, 장안산 정상.

내리막부터
내리막에서 신이 났다. 4km를 그냥 내리 달렸다. 심박이 170을 넘어 178까지 갔다. CP3 지실가지마을에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 젤을 먹어야 하는데 속이 울렁거려서 안 들어갔다. 여기까지 재밌게 뛰었으니까 남은 구간은 천천히 걸으면서 가자고 했다.
28km에서 카페인 든 젤을 먹었다. 그건 들어갔다. 걷겠다고 했는데 34km 구간을 9분 35초로 뛰고 있었다.
CP4는 아침에 CP1으로 지났던 신덕산마을이다. 현수막에 NOW 신덕산마을 → NEXT FINISH.

마지막은 동촌리 가야고분군. 봉분 사이로 나무 계단이 올라간다. 38km. 너무 힘들었다. 원래 이렇게 힘들게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뛰다 보니 이렇게 됐다. 최선을 다하자. 2km밖에 안 남았다.

15시 38분, 40.5km.

끝나고
마지막 2km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달리는 데 에너지를 다 써서 소화시킬 에너지가 없었던 것 같다.
순천 때는 이러지 않았다. 훈련이 안 된 상태였고 100km였으니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이번은 40km라서 뛰어봐도 되겠다고 생각했고, 뛰다 보니 한번 최선을 다하면서 즐겨보자는 마음이 됐다.
공식 기록 7시간 38분 10초, 60위. 19.6km에서 108위였으니 후반에 48명을 지나쳤다. 작년 38J가 8시간 31분이었으니 53분 줄었다.
이번 장수는 후회 없이 뛰었고, 최선을 다했다. 살살 뛰면서 힐링런을 하러 간다고 했지만, 뛰다 보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뛰는 것도 하나의 힐링이더라. 그렇게 최선을 다했고, 약간의 오버페이스로 힘들었지만 이것도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다. 다음은 UTNP 5 Peaks. 이것도 후회 없이 잘 즐기고 와야겠다.